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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국보→"가짜"→"고려시기 작품"…비운의 종, 파란만장 유랑기
작성자 이**** (ip:)


[노형석의 시사문화재] 양평 용문산 상원사 종일제 상원사 불태워 서울 남산으로 옮겨재야의 종 치는 명물…“조선 3대 명종”보물 지정됐다가 해방 뒤 국보로 승격“남산 옮겼을 때 일제가 바꿔치기” 국보 자리 쫒겨나 50년 방치되던 중보광사-태고사-상원사 등 8곳 전전72년 “7세기 범종” 2012년엔 “통일신라”지난달 학술대회 “일 중세 종” 주장 대두 맑은 깨달음의 소리를 내는 전통 범종에 관해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은 국보로 지정된 두 개의 종을 떠올린다. ‘에밀레종’으로 알려진 경주 신라 성덕대왕 신종과 악기를 연주하며 날아가는 비천신 형상이 새겨진 국내 최고의 오대산 상원사 신라 종이다. 하지만 한국 문화재 역사에는 두 종과는 대전지식산업센터정반대로 애초 국보였다가 가짜라는 지적을 받아 결국 떠돌이 종으로 전락한 파란만장한 내력을 가진 종도 전해온다. ‘조계사 종’으로 불린 경기도 양평 용문산 상원사 종이다.명칭에 용문산을 넣어 오대산 종과 구분하는 이 불운의 종은 소장한 절만 여덟번이나 바뀌었다. 처음 만든 시기와 내력은 전하지 않지만, 1920년대 나온 (이능화)에는 “원래 용문산 보리갑사란 절에 있다가 조선 후기 인근 상원사로 옮겨졌다”고 전한다. 이 영통파스타종은 구한말인 1907년 일제가 상원사 부근을 근거지로 삼은 의병을 소탕한다며 종만 남기고 절을 불태우면서 수난을 당하기 시작한다. 조선에 진출한 일본 정토진종 교단의 동본원사가 경성에 별원을 세우면서 경산출장안마대한제국 고종 황제를 압박해 하사금을 받아내 이 종을 사들인 뒤, 양평군민을 동원해 1908년 4월 경성 대구출장마사지남산 아래로 옮긴 것이다. 이때부터 이 종은 ‘별원 종’이 됐다. 연말 제야의 종을 치는 명물로 종소리가 라디오로 중계까지 되면서 조선 3대 명종으로 꼽혔다. 일본 학자 세키노 다다시가 ‘고려 초기, 고대 조선과 지나의 양식을 절충한 수작’이라고 평하면서 1939년 보물로 지정됐고, 해방 후 국보로 승격했다. 그러다 별원이 사라지자 수송동 태고사로 이전해 ‘태고사 종’이 됐고, 1955년 불교정화운동으로 조계종이 태고사를 접수하자 ‘조계사 종’이 됐다. 이렇게 떠돌던 종은 1962년 역사의 저주와도 같은 선고를 받는다. 당시 문화재 학계의 태두였던 황수영 박사가 “일본의 근대 가짜 종”이라고 주장하며 내보험다보여국보 지정 해제를 요구한 것이다. 1907년 별원으로 옮길 때 일본이 진품을 바꿔치기해 빼돌리고 가짜 종으로 대체했다며, 종의 몸체를 상하좌우로 구획한 윤곽선과 종 고리의 쌍룡 양식 등이 전형적인 일본 종 양식이라는 내용이었다. 결국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종은 국보 자리에서 쫓겨났다. 양식상의 차이는 물론 종을 옮길 때 본 당시 모습과 다르다는 양평 촌로들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종은 그 뒤 30년 넘게 방치되다 1997년 파주 벽제 보광사로 옮겨져 ‘보광사 종’이 됐고, 2000년 돌아와 ‘조계사 종’이 됐다가, 2010년 원래 자리로 돌아와 ‘상원사 종’이란 이름을 되찾았다. 국보 지정이 해제된 1962년부터 지금까지 학계에선 종의 제작지와 제작 시기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다. 1972년 남천우 전 서울대 교수가 “국내 어떤 종에도 없는 종 표면의 윤곽선과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고 길쭉한 몸통 양식은 중국과 일본의 종 스타일이며, 이런 외형이 신라 종 특유의 비천상·연화문 등의 무늬와 결합했다는 점에서 고대 한중일 범종의 특징이 혼합된 국내 최고의 7세기 범종 시원 양식”이라고 주장하며 황 박사의 통설에 도전장을 던졌다. 2012년에는 종의 성분이 보험비교통일신라 종 성분과 유사하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한국과학기술원 도정만 박사팀의 연구 결과도 제시됐다.지난달 31일 한국미술사교육학회 주최로 열린 ‘용문산 상원사 종의 과거와 현재’ 학술대회에서는 양식사, 보존과학적 측면에서 최고 혹은 근대기 위작 모두 아니라고 단언을 내렸다는 점이 주목된다. 공예사 전문가인 최응천 동국대 교수는 쓰보이 료헤이라는 일본의 범종 연구 거장의 분석을 소개하며, 11~13세기 일본에서 통일신라의 주악비천상 문양이나 연화문 문양을 자신들의 종 양식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모방식 형태의 작업이 고야사 종과 평등원 종 등 여러 일본 중세 종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논증했다. 신라와 고려 종 양식의 영향을 받은 일본 장인의 작품이 당시 고려로 들어왔을 공산이 크다는 주장이다. 최 교수는 또, 상원사종이 국내 최고의 7세기 종으로 한반도 고대종 양식의 시원이 된다는 남 교수의 주장과 관련해 이 종에 새겨진 비천상이 9세기 전형적인 신라 도상이란 점에서 남 교수의 주장 자체가 시기적으로 맞지않는 않는 모순을 지녔다고 짚었다. 범종연구자인 원보현 박사도 한일병합 뒤 조선에 진출한 동본원사 별원의 상원사 종 매입과 관련된 각종 근대기 사료들을 집중 분석한 논고를 통해 근대기에 종이 급조된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금속유물 전문가인 박학수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 연구관은 종에 대한 과학적 분석 작업의 맥락에서 최 교수와 원 박사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공개했다. 상원사 종 몸체 표면에 나뭇잎처럼 갈라진 균열이 곳곳에 보이는데, 이런 흔적은 몸체 자체를 위 보험비교사이트아래 흙틀에 짜서 주조하는 사형 주조에 따른 결함이라는 것이다. 사형 주조는 고대 한반도 종에는 없고, 일본 전통종에서만 확인되는 제작 기법이다. 상원사 종이 일본산임을 입증하는 또다른 근거가 제시된 셈이다. 박 연구관은 상원사 종에서 통일신라 종의 성분이 나왔다는 도정만 박사팀의 2012년 연구결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도 박사팀의 연구는)탐측한 종 부위에 따라 분석값의 전립선염오차가 많은 비파괴 분석법을 주로 썼으므로 확실하게 신뢰하기 어렵다. 고대 한중일 종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분위의 탐측데이터를 확보해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역류성식도염치료학술대회에서 공개된 연구 성과로 상원사 무주스키강습종을 둘러싼 논의는 다시 1920~30년대 세키노 다다시가 내놓은 고려 시기 제작설에 가까워졌다. 근대 모조품이란 천형 같은 굴레는 벗게 된 셈이다. 중세 일본산이나 고려산임을 입증하려면 일본 범종 양식과 성분을 면밀하게 분석해 비교해야 한다. 이런 과제는 문화재 학계가 풀어야 할 업보다. 상원사 종이 한·일 미술사를 잇는 가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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